= 종가 측면 전경 =
종가에서 탄생한 인물 중 양도공의 5대 종손인 쌍매헌(雙梅軒) 학(鶴)은 진사(進士)로서 혼탁한 세상을 피해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등 당대 명사(名士)들과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으며 학문을 연마한 은일지사(隱逸之士)이다. 이분이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 海南尹氏, 호조참판, 孤山 尹善道의 고조부)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사매ㆍ만취ㆍ한천의 3형제를 낳았다.
공의 장남인 사매당(四梅堂) 응종(應鍾)은 임진왜란 때 아우인 한천당 (寒泉堂) 홍종(洪鍾: 황산도찰방)과 아드님 극부(克扶, 생원, 오수도찰방, 왕자사부), 극양(克揚: 충의위), 조카 극수(克授: 충의위) 등을 이끌고 장성남문(長城南門)에 이어 영광(靈光)에서 창의(倡義)하여 수성대장(守城大將)이 된 분으로, 수행한 자제분들과 함께 장성의 오산창의사(鰲山倡義祠)와 영광의 수성사(守城祠)에 배향되었다. 사매당의 또 한 아우인 만취당(晩翠堂) 휘 황종(黃鍾: 召村道察訪)은 성리학자(性理學者)로 저명하였으며, 기축육현(己丑六賢)에 드는 인물이다. 사매ㆍ만취ㆍ한천의 3형제분은 후일 모두 영당사(影堂祠: 지금의 畝長書院)에 배향되었다.
사매당의 3남 극부(克扶)는 호가 칠매(七梅) 혹은 우헌(愚軒)이며, 제수된 벼슬 이름에 따라 흔히 사부 공으로 일컬어지는데, 선조조 기축년(1589)의 옥사(獄事)와 광해조에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났을 때 뜻을 굽히지 않았고, 임란 때는 아버님 사매당을 도와 영광(靈光)과 장성(長城)에서 창의하여 나라를 지켰으므로 대학자(大學者) 백호(白湖) 윤휴(尹)가 공의 묘갈명을 지어 행적을 기린 바 있는 충의의 인물이다.
11대 종손인 죽재(竹齋) 상호(相虎)는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문인(門人)으로 젊어서부터 학문이 높았는데, 만년에 효행(孝行)으로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받았고, 후일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죽재 공의 장손이자 양도공 13대 종손인 정와(亭窩) 필원(馝遠) 역시 효행(孝行)으로 저명하여 나라에서 복호(復戶)가 내렸고, 그 아우인 신봉(新峰) 복원(馥遠)은 성리학자로서 정조조(正祖朝)에 경학이 뛰어난 어진 선비[經學賢良之士]로 추천되어 왕의 부르심을 받아 후일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으며 순조조에 영당사(影堂祠)에 배향되었다.
정와 공의 아드님이 생원(生員)ㆍ진사(進士) 양과(兩科)에 합격한 매죽헌(梅竹軒) 이석(以錫)이며, 신봉 공의 아드님이 경학(經學)으로 이름 높아 정조조에 나라의 부름을 받았던 진사(進士) 수헌(守軒) 이집(以鏶)이고, 수헌 공의 큰아드님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태천군수(泰川郡守)와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종4품. 현 고등검찰관.)을 지내고 이재(齋) 황윤석(黃胤錫) 등과 더불어 호남 4걸(湖南四傑)로 일컬어진 순조조의 성리학자 칠우(七迂) 윤성(潤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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