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형성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 당산 567번지에 위치한 양도공의 종가(宗家)는 사당인 부조묘(不廟), 안채인 본채, 사랑채인 상선당(相善堂), 솟을대문(大門)인 외삼문(外三門), 중문(中門), 초가로 된 곳집[庫間]과 호제집(노비들의 집) 등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전통가옥이다. 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地形)에 정남향(正南向)으로 탁 트인, 풍수학적으로도 두루 잘 갖춘 명당(明堂)에 자리잡고 있다.
양도공 종가(宗家)는 성종조에 양도공의 증손(曾孫) 충의위 사맹(司猛) 휘 효상(孝常)이 할머니 정부인(貞夫人)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낙향(落鄕)해 살았던 담양(潭陽)에서 처향(妻鄕)이 있었던 이곳으로 이주(移住)하여 터를 잡음으로써 형성되었다. 즉, 사맹 공이 당시에는 영광군에 속했던 삼계면 죽탄 부락[현재는 장성군 소속]의 명문가 광산 이씨(光山李氏)의 가문에 장가듦으로써 처가에서 멀지 않은 이곳 당산 마을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사맹 공의 장인 공조참판 이시지(李時止)는 그 아들인 병조참판 이윤종(李胤宗)과 더불어 호남 일대에 명성(名聲)이 울렸던 인물이었다.
이상과 같은 내력과 역사적 정황(情況), 여러 문헌에 비추어 살펴보건대, 종가의 본채는 대략 성종조 초엽에, 부조묘는 이보다 조금 후인 연산 기미년(1499)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볼 때, 양도공 종가는 500년 이상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歷史)를 지니며 후손들의 숭조(崇祖) 돈종(惇宗)의 터전이 되어온 곳임을 알 수 있다.
종가 전경

종가 본채의 주련(柱聯: 집의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은 도연명(陶淵明)의 5언고시(五言古詩) 「귀전원거(歸田園居)」를 후손인 서예가 여해(如海) 재철(在哲)의 예서(隸書)로 새긴 것이다. 세속의 번화(繁華)와 명리(名利)보다는 은일(隱逸: 세상을 피하여 숨음. 또는 벼슬하지 아니하고 숨어 살던 학자.)과 수기(修己)ㆍ효제(孝悌)의 길을 택했던 우리 선조(先祖)들의 심경(心境)을 그대로 담은 듯한 이 시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남산 아래에다 콩을 심었더니,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잡초가 무성하여 콩 싹이 드물구나.
侵晨理荒穢(침신이황예)   새벽 일찍 거친 풀을 다스리고
帶月荷鋤歸(대월하서귀)   달빛 받으며 호미 메고 돌아오네.
道狹草木長(도협초목장)   길은 좁은데 초목은 자라나서
夕露沾我衣(석로점아의)   저녁 이슬이 나의 잠방이를 적시누나.
衣沾不足惜(의점부족석)   옷이야 젖더라도 아까울 것 없으니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다만 농사나 틀림없이 되길 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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